일제 강점기 신의주 안동간 밀수
작성자 : 김재석 조회수 : 244
등록일 :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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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대 ‘신의주·안동’ 간 밀무역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2) 밀수 하면 신의주 밀수출을 의미했다. 당시 신의주는 밀정과 밀수꾼이 조선에서 제 일 많다 할 정도로 밀수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중국해관 에서도 신의주의 대안 안동을 중국에서 가장 심각한 밀수 지역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신의주 · 안동’ 간 밀무역은 만주사변을 계기로 대규모·조직적으로 이루 어지며 급증했다. ‘신의주·안동’(이하 ‘신·안’) 간 밀수는 만주국이 수립되는 1932년 3월을 기 점으로 그 양상과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일본은 ‘신·안’ 간 밀수를 그들의 정책 목적에 따라 지 원하기도 하고 단속하기도 했다. ‘신·안’ 지역이 중국 국민정부, 관동청, 만주국, 조선총독부, 일본 외무성 등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던 지역으로 단속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단속 정책이 변화 했기 때문이다.

 

본고에서는 식민지 시기 조선의 사회경제적 요 인으로 대규모로 발생한 빈민들이 밀수에 나선 상황과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주목했다. 만주국 수립 이후 변화된 밀수단속과 그에 맞선 밀수꾼 들의 대응에 대해서는 당시 신문에 보도된 밀수 사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또한, 박경리 의 소설 토지 등 우리 문학작품에 그려진 국경 접 경지대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의 삶을 밀수라는 관점에서도 알아봤다. 신의주 밀무역의 발생 원 인과 배경 그리고 단속을 둘러싼 중국, 만주국, 조선총독부의 갈등에 대해에서도 알아보고 쫓고 쫓기던 밀수 현장의 영원한 맞수 단속 세관원과 밀수꾼의 대응에 대해 살펴봤다.